안녕하세요. 꿈꾸는 모래시계, 꿈모시입니다.
오늘은 #세계유산조선왕릉 #홍유릉 #덕혜옹주묘 이야기 함께해요.
비스타 워커힐 서울 피자힐/PIZZA HILL을 방문했던 날...
피자 먹방 후 가벼운? 산책을 위해 #조선왕릉 #홍릉 #유릉 을 찾았습니다.
#남양주홍유릉 의 관람시간 및 관람요금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담아왔으며,
포스팅에 소개한 역사 내용 또한 홈페이지에서 담아왔어요.
주차장은 매표소 바로 앞쪽과 건너편 두 곳이며, 주차요금은 무료입니다.
홍유릉엔 두 릉 외에도 영원과 회인원, 덕혜옹주묘와 의친왕묘, 후궁묘까지 인접해있습니다.
홍유릉만 돌아본다면 1시간정도면 충분하지만,
다른 곳까지 다 들리려면 최소 2시간정도는 여유를 갖고 방문하시길 추천합니다.
또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입장마감 시간도 다소 차이가 있으니 미리 확인해두시길...
꿈부부는 입장 후 유릉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재실부터 둘러본 후 유릉으로!!! 걸을을 옮겼는데요.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효황제와
첫 번째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와 두 번째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입니다.
순종효황제(재세 : 1874년 음력 2월 8일 ~ 1926년 양력 4월 25일,
황재위 : 1907년 양력 7월 19일 ~ 1910년 양력 8월 29일)는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민씨의 둘째 아들로 1874년(고종 11)에 창덕궁 관물헌에서 태어났습니다.
순종의 첫 번째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재세 : 1872년 음력 10월 20일 ~ 1904년 양력 11월 5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은부원군 민태호와 진양부부인 송씨의 딸로
1872년(고종 9)에 양덕방 계동 사저에서 태어났습니다.
순종의 두 번째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재세 : 1894년 음력 8월 20일 ~ 1966년 양력 2월 3일)는
본관이 해평인 해풍부원군 윤택영과 경흥부부인 유씨의 딸로 1894년(고종 31)에
양근 서종면 외가(현 양평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릉은 한 봉분 안에 세 분을 같이 모신 동봉삼실 합장릉 입니다.
홍릉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조선왕릉을 계승하고
명나라의 황제릉을 인용한 대한제국의 황제릉으로 조성되었으며,
홍릉에 비해 능역 규모가 좁지만, 석물의 조각이 사실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을 설치하였습니다.
#순종효황제 는 태어난 바로 다음 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
897년(광무 1)에 황태자로 책봉되었습니다.
1907년(광무 11)에 일본의 압박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자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로 등극하고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습니다.
등극 후일본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위한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었고, 1909년(융희 3)에는 기유각서가 강제 체결되어 사법권을 강탈당하게 됩니다.
결국 1910년(융희 4)에 친일파에 의해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 후 이왕(李王)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거처하며 망국의 한을 달래다가
1926년 양력 4월 25일 새벽 6시 15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 은...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기고.... 창덕궁 대조전에서 5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차히 산 지 17년, 2천만 생민(生民 : 국민)의 죄인이 되었으니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다.
지금의 병이 위중하니 한 마디 말을 않고 죽으면 짐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이 조칙을 중외에 선포하여 병합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백성들이 분명히 알게 되면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과 양국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리라.
백성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어둠 속에서 여러분을 도우리라."
신문에는 '5백 년 종사의 마지막 황상(皇上) 승하'라는 제목의 기사가 전면을 장식하였습니다.
그 해 6월 10일 발인하는 날, 순종의 발인 행렬이 유릉을 향하여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 단성사 앞을 지날 때,,,
황제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나온 수많은 군중 속에서 수천 장의 격문이 날아오르며,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지막 황제의 인산일을 기하여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으로, 순종의 마지막 유언을 백성들이 알 리 만무하였으나
마지막 황제의 죽음은 백성들의 독립에 대한 욕망을 더욱 고조시키게 됩니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1882년(고종 19)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1897년(광무 1)에 황태자비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종 등극 전인 1904년(광무 8)에 경운궁(덕수궁) 강태실에서 33세로 세상을 떠났고
1907년(융희 1) 순종 등극 후 순명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순정효황후 윤씨는 1907년(광무 10)에 황태자비로 책봉되었고,
같은 해에 순종이 등극하자 대한제국 최초의 황후로 책봉되었습니다.
황후는 한일합방체결을 반대하여, 병풍 뒤에서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어전회의를 듣고 있다가 백부 윤덕영에게 빼앗겼다고 합니다.
결국 1910년(융희 4) 한일합병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이왕비(李王妃)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거처하게 됩니다.
일제의 침략행위를 경험하였고,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어도
대한제국의 황후로서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1950년, 순정효황후는 한국전쟁 당시에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창덕궁에 남아있었는데,
이때 인민군들이 창덕궁에 들이닥쳐 행패 부리는 것을 보고 크게 호통을 쳐서 내보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당당함과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생활하였다가
1966년 양력 2월 3일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릉과 홍릉 사이에는 #홍릉연지 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종황제 가 홍릉을 새로 조성할 때 작은 연못을 연지로 크게 확장하여 공사한 것으로,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방형(方形)연지가 아닌 원형(圓形)연지로 조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홍릉은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민씨의 능입니다.
고종태황제(재세 : 1852년 음력 7월 25일 ~ 1919년 양력 1월 21일,
왕재위 : 1863년 음력 12월 13일 ~ 1897년 양력 10월 11일,
황제위 : 1897년 양력 10월 12일 ~ 1907년 양력 7월 19일)는 흥선대원군(헌의대원왕)과
여흥부대부인(순목대원비) 민씨의 둘째 아들로 1852년(철종 3)에 청니방 사저(운현궁)에서 태어났습니다.
명성태황후 민씨(재세 : 1851년 음력 9월 25일 ~ 1895년 음력 8월 20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성부원군 민치록과 한창부부인 이씨의 딸로 1851년(철종 2)에 여주 사저에서 태어났습니다.
홍릉은 기존 조선왕릉의 형식과 다른 대한제국 황제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 한 후 명나라의 황제릉을 인용하고
기존의 조선왕릉을 계승하여 개혁한 형식입니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을 설치하였고
기존의 능침공간에 있던 석물(석양, 석호, 문무석인)들은
제향공간 앞으로 배치하고, 종류와 개수를 늘렸습니다.
제향공간에는 정자각 대신 일자형 건물의 침전을 세우고 안에는 당가를 설치하였으며,
침전 앞에는 문무석인, 기린석, 코끼리석, 사자석, 해태석, 낙타석, 석마의 순으로 석물을 배치하였습니다.
기존의 조선왕릉과 달리 향로(香路)가 가운데에 깔려 있고,
판위는 홍살문을 기준으로 왼쪽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 밖에 수복방, 수라간, 비각, 예감, 어정 등이 능역 안팎으로 배치되었고 능역 옆에는 재실이 있습니다.
고종태황제는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신정익황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총괄하였습니다.
그 후 최익현의 상소로 인해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1873년(고종 10) 고종이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재위기간 동안에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는 등 대외 개방정책을 취하고,
군제를 개혁하고 조사시찰단을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을 들여왔는데요.
친정선포 후 민씨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으로 인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894년(고종 31)에는 농민혁명이 발발하였으며 갑오개혁을 실시하였고,
1895년(고종 32)에 을미사변을 겪은 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아관파천을 단행합니다.
1897년에는 자주 독립 국가로서의 면목을 내세워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르나 일본의 압력이 심해지는 가운데
1905년에 을사늑약을 맺고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겼으며,
1907년에 일제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보호하고자 세계만국평화회담이 열리는
헤이그로 밀사를 파견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게 됩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과 친일 대신에 의해 1907년에 강제 퇴위되였으며
그 후 1919년에 덕수궁(경운궁) 함녕전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명성태황후 민씨는 1866년(고종 3)에 고종의 사친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로 책봉되었고
흥선대원군이 섭정에서 물러나자 친정일가가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쇄국정책에 맞서 일본과 수교하고 1882년에는 임오군란으로 신변이 위태로워지자
궁궐을 탈출하여 피신생활을 하였는데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여 군란을 진압하고 다시금 정권을 잡았습니다.
1884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 때에도 청나라를 개입시켜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면서 러시아에 접근하여 일본 세력을 추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외교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본공사에 의해
1895년(고종 32)에 경복궁 건청궁 옥호루에서 시해당하였습니다.
조선... 그 긴 역사 중 가장 험난했던 시기가 아니였을까요?
물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많은 전쟁도 있었으나 조선이... 사라지게되는 뼈아픈 역사의 시기....
급...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다시 생각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영원 과 #회인원 은 홍유릉 구역을 나와 밖으로 나가야합니다.
다시 홍유릉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필요하니 잘 소지해주세요.
영원과 회인원은 무료관람이며 계절에 따라 관람시간이 다릅니다.
사진 속 관람시간 안내를 참고해주세요.
영원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영친왕)와 의민황태자비 이씨(이방자)의 원소입니다.
#의민황태자 (재세 : 1897년 양력 10월 20일 ~ 1970년 양력 5월 1일)는
고종과 순헌황귀비 엄씨의 아들로 1897년(광무 1)에 덕수궁(경운궁) 숙옹재에서 태어났습니다.
1900년에 황제의 아들로써 영친왕에 책봉되었고,
1907년(융희 1)에 황태자로 책봉되었지만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유학이 결정되어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본 왕족인 마사코(방자)와 결혼하였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으로 이왕세자(李王世子)로 강등되었고,
1926년에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명목상으로 이왕(李王)의 지위를 받았습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교수부장, 육군 중장이 되었다가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하려 하였으나 무산되었고
이 후 평민으로 강등되어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1963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어 귀국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병환이 악화되어 혼수상태로 귀국하였기 때문에 병상생활을 하다
1970년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민황태자비 이씨(재세 : 1901년 양력 11월 4일 ~ 1989년 양력 4월 30일)는
일본 왕족인 수정친왕의 딸로 동경부 동경시 이본궁저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일본 황태자비로 정해졌었으나
대한제국과의 정략결혼이 결정되면서 1920년에 황태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의민황태자 사이에 2남(이진, 이구)을 낳았으며 1945년에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하려 하였으나 무산되었고
광복 후 일본 왕족에서도 제외되어 재산이 몰수되는 일까지 겪다가
1963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어 귀국하였습니다.
귀국 후엔 사회봉사사업에 힘을 써 신체장애자 재활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사회복지법인 명휘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의민황태자가 세상을 떠난 후 영친왕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유릉과 달리 영원은 바로 가까이까지 올라가 볼 수 있었는데요.
이 후 찾아갈 덕혜옹주묘를 생각하니 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이방자 여사의 마지막 소원이 덕혜옹주보다 단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이였다고 하죠?
그 바람대로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방자 여사는 같은 해 4월 3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원 바로 곁에 위치한 회인원은 의민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이구 황세손의 원소입니다.
저희가 찾아갔던 5월엔 공사중이였는데 현재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이구 황세손(재세 : 1931년 양력 12월 29일 ~ 2005년 양력 7월 16일)은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 이씨의 둘째 아들로 1931년에 태어났습니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려 하였으나 역시 무산되어 일본에서 계속 체류하며 생활하였고
1953년에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가로서 활동하였습니다.
1959년에 미국인 줄리아와 결혼 후 1963년에서야 귀국할 수 있었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 출강하기도 하였으나
의민황태자 사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명예총재를 지내다
2005년에 일본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의친왕묘 , #덕혜옹주묘 앞에 서게 됩니다.
무료관람이며, 관람마감 시간이 홍유릉보다 빠릅니다.
게다가 12월~2월 사이에는 개방이 중지되니 이점도 참고하세요.
의친왕묘는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과 의친왕비 김씨의 묘소입니다.
#의친왕 (재세 : 1877년 음력 3월 30일 ~ 1955년 양력 8월 16일)은
고종과 귀인 장씨의 아들로 1877년(고종 14)에 태어나, 1891년(고종 28)에 의화군에 봉해졌습니다.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명으로 미국유학을 하였고, 이듬해인 1900년에 의친왕에 책봉되었습니다.
1905년에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한제국 육군 부장, 대한적십자 총재 등을 역임하였고
1910년 한일합병조약 이후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조국의 광복에 힘을 썼습니다.
대동단 간부들과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의해 실패되었고,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하였습니다. 1945년 광복 후 평민의 신분으로 살았으며,
한국전쟁을 겪은 후 1955년에 안국동 사동궁에서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친왕비 김씨(재세 : 1881년 양력 12월 22일 ~ 1964년 양력 1월 14일)는
본관이 연안인 김사준의 딸로 1881년(고종 18)에 태어났습니다.
1893년(고종 30)에 의화군과 결혼하여 연원군부인에 봉해졌고,
1907년(융희 1)에 의친왕비에 책봉되었습니다.
의친왕 사이에는 소생이 없으며, 한일합병조약(1910),
광복(1945), 한국전쟁을 겪은 후 1964년에 궁정동 칠궁에서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덕혜옹주묘는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의 묘소입니다. 단묘의 형태로 상설은 의친왕묘와 같으나
의친왕묘와 달리 표석을 설치하였고 표석에는 ‘대한 덕혜옹주지묘’라고 써있다고 합니다.
#덕혜옹주 (재세 : 1912년 양력 5월 25일 ~ 1989년 양력 4월 21일)는
고종과 귀인 양씨의 딸로 1912년에 덕수궁(경운궁)에서 태어났습니다.
1921년에 덕혜옹주의 칭호를 받았고 1922년에 심상소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1925년에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유학이 결정되자 일본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이후 신경쇠약의 증세가 보이기 시작되어 조현병의 진단을 받게되고
1931년에 대마도주의 후손 종무지와 정략결혼 후 딸(정혜)을 낳았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병상생활을 하였습니다.
결국 1955년에 종무지와 이혼하였으며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1962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 후 창덕궁에서 실어증과 노환으로
여러 차례 치료를 받다 1989년에 창덕궁 수강재에서 7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홍유릉과 덕혜옹주묘에 다녀왔습니다.
꿈부부는 좀 힘들어서 후궁묘까지는 가지 않았는데
어느 왕릉보다 먼저 가보고 싶던 홍유릉과 덕혜옹주묘를 이제야 다녀왔네요.
지금은 가을의 끝자락이 만역하겠지요.
다음엔 헌릉과 인릉을 가려고 계획 중인데... 눈 내리는 날.... 가봐야겠습니다.
(우 12238)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전화 : (031) 591-7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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