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꿈모시입니다.
오늘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다녀온
백범김구선생기념관 & 효창공원 이야기 함께해요.
크리스마스에 무얼하며 보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혼 전엔 매년 연극을 봤고 결혼 후엔 집에서 홈파티를 하곤 했는데요.
어지러운 요즘, 좀더 의미 있게 보내자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지난 여름부터 고마운 분들을 찾아 나들이를 많이 떠나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기에,
도산 안창호선생 기념관과 윤봉길 의사기념관에 이어 세번째로 찾아간 곳은 바로 백범 김구 선생기념관입니다.
백범기념관으로 가기 전 먼저 발길이 멈춘 곳은 효창원입니다.
이 안에서도 백범기념관을 갈 수 있어서 어딜 먼저 가시든 상관이 없어요.
저희는 효창원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공원 내부지도인데 CCTV 설치가 ㅋㅋ 나와있는 지도를 찍어왔네요.
사적 제330호인 이곳은 조선 제 22대 왕 정조(正祖)의 장자로 5세에 작고한 문효세자(文孝世子)(1782∼1786)의 묘소
즉 효창원(孝昌園) 자리인데 그 후 이 경내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성씨(宜嬪成氏), 순조(純祖)의 후궁인 숙의박씨(淑儀朴氏) 및
숙의박씨(淑儀朴氏)의 소생 영온옹주(永溫翁主)를 안장한 조선왕실의 묘원(墓園)으로 처음에는 효창묘라 하였습니다.
1894년 5월 청일전쟁 발발 직전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침공한 일본군의 주력부대인 대도(大島) 혼성여단이
지금 효창운동장 남단의 솔밭에 주둔하면서 효창원의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훼손되기 시작하였는데요.
일제는 1924년 6월 효창원의 일부를 떼어서 효창공원을 개설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 이하의
상기 묘소를 모두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 서삼능 경내로 천장함으로써 효창원은 그 의미와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조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의 주도하에 조국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이봉창(李奉昌)(1901∼1932) ·
윤봉길(尹奉吉)(1908∼1932) · 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의 유해를 고국 땅으로 모시게 되어,
1946년 7월 효창원의 중심지인 옛 문효세자 묘터에 국민장으로 안장함과 아울러
안중근(安重根)(1879∼1910)의사의 가묘를 나란히 모셨습니다.
이어 1948년 9월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및 주석 이동녕(李東寧)(1869∼1940) 선생과
국무원 비서장 차리석(車利錫)(1881∼1945) 선생의 유해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환국후 서거하신 조성환(曺成煥)(1875∼1948) 선생을 동남쪽 언덕에 안장하였습니다.
1949년 6월에는 임시정부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이 민족통일의 한을 품고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장으로 서북쪽 언덕에 모시어 일대가 선열묘역이 되었습니다.
이 후 민족통일의 방책 등에서 이견을 보이던 이승만 영도하의 당시 집권세력에서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었고,
그리하여 선열묘소를 교외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부단하였는데, 그 일단으로 1959년 봄부터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 유치를 구실로
묘소 바로 앞에 효창운동장 개설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에 독립투사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등이 중심이 되어
효창공원선열묘소보존회(孝昌公園先烈墓所保存會)가 결성되고, 언론사를 비롯한 각계의 여론이 비등하여 묘소 이전은 보류되었지만
효창운동장은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 속의 연못 및 섬까지 희생시키고 끝내 1960년에 개설되었습니다.
이러는 동안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또 다시 선열묘역을 경기도 고양군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 부근으로 이전하려고 추진하였으나
역시 유족과 사회각층의 반대로 보류되습니다.
이같은 경로를 거쳐 1972년 서울시에서 효창공원 조경사업(묘지 진입로 및 석계단 설치·외곽 주변정리·수목 조성 등)을
10개년 계획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이는 1981.6 유료개방 때까지 계속),
1977년 7월에는 건설부에서 효창공원으로 고시하였습니다.
1984년 12월에는 서울시의 협조로 각 묘소 앞의 묘표석(墓表石)을 새롭게 개수(改竪)하였고
1989년 11월 의열사(義烈祠) 및 창열문(彰烈門)이 건립되고 묘역 확장과 정비가 대충 마무리되었으며,
1989년 6월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효창원 정보는 공식홈페이지에서 담아왔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조심스레 보이는 곳이 삼의사묘입입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삼의사 묘이지만 네개의 묘역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비석이 없는 가장 왼쪽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가묘입니다.
↑ ↑ ↑ https://youtu.be/pro-QpZOMTc 효창원 삼의사묘 동영상입니다.
삼의사 묘역에서 내려다본 공원 내부.
주민들의 운동하는 공간도 있고 산책하기 좋은 곳이더라구요.
삼의사 묘 아랫쪽엔 의사분들의 기리는 무궁화가 있답니다.
무궁화가 필때 가게되면 더 아름다울 듯해요.
날씨도 좋고, 뜻깊은 하루를 보내며 기분 좋은 꿈모시.
근데... 저희 임시정부요인분들의 묘역을.. 못 들렸습니다.
이날 삼의사 묘역 → 백범기념관 → 김구선생 묘역을 봤는데
족저근막염이 심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답니다.
의열사는 애국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저희가 갔을땐 들어갈 수 없었는데요.
이곳에 모셔진 분들의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답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 백범 김구 기념관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주차는 백범김구기념관 전시 관람시 2시간 무료주차입니다.
다른 기념관들과는 달리 백범김구 기념관은 내부 촬영이 안된답니다.
아쉬운 마음에 영상을 보다가 이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요.
다시 한번 꿈남편과 울컥한 마음이 가득했답니다.
얼마나 고마워할 분들이 많은지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나는 우리나가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ㅇ르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 중에서-
김구 선생께서 타셨던 차입니다.
기념품샵 쪽에 있어 못 보고 그냥 가시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가시는 분들 잊지말고 보고 오시길.
백범기념관에서 나와니 날씨가 흐릿....
그리고 2시간을 기념관을 돌아보며 종아리까지... 찌릿찌릿..
가끔씩 너무 힘드네요 흑흑....
그래도 김구선생 묘역은 올라가봐야겠기에 꾹 참고 올라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김구선생님 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삼의사에 이어 이곳에서도 잠시 묵념을 했습니다.
김구선생님 묘역에서 보이는 남산.
그리고 길을 내려오다 의열사를 슬쩍 훔쳐봤답니다.
카메라를 이용해서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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