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파주 이이 유적)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얼이 살아숨쉬는 곳

꿈모시 2016. 11. 2. 17:29
안녕하세요 꿈모시입니다.
오늘은 파주로 다녀온 단풍여행 이야기 이어갈께요.

느티나무의 단풍과 소박한 아름다운이 가득했던 

화석정(http://ggumosi.tistory.com/153)을 떠나 도착한 곳은 파주 이이 유적.




율곡 이이 선생의 유적지인 이 곳은 국가 사적 제 525호로,

유적지내에는 율곡기념관과 율곡선생을 비롯한 가족묘역, 선생의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이 자운산 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용시간은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이고 주차는 무료이며

입장료는 대인 ( 만 19~64세 ) : 1,000원 / 소인 ( 만 6~18세 ) , 군인 및 경찰 : 500원 / 만 65세이상, 6세미만 무료입장입니다.


* 역사 관련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담아왔습니다. *




가을 단풍이 가득했던 이 곳으로 들어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이이, 신사임당 동상


그리고 잔디광장인데요.

저희는 좀 이른 시간에 가서 나들이 나온 분들이 없었는데

나중에 나올때 보니 돗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었답니다.

지금은.. 갑자기 추워져서.. 무리일 듯해요.




본격적으로 이 곳 나들이를 떠나기 전에,

꿈남편과 꿈모시, 어머님 크로스!! ㅋ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율곡기념관입니다.

1~2층으로 나눠져있는 이곳에서 그 분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율곡이이(李珥)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1551)은

조선 연산군 10년(1504)에 강릉에서 진사(進士) 신명화(申命和)의 무남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19세 때 이원수에게 출가하였는데 친정에 아들이 없어서 남편에게 동의를 구한 뒤 친정에 머물렀으며,

그 후 시댁의 오랜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서 생활하기도 하였고 38세가 되어서 서울 수진방 시댁에서

시댁살림을 주관하고 슬하에 4남 3녀를 둔 다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본명은 신인선(申人善)이고 사임당은 당호(堂號:이름대신 허물없이 부르거나 쓰기 위해 지은이름)로써,

최고의 여성상인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사임당은 어려서 경전(經典)에 능통하였으며, 7세 때 이미 산수도(山水圖), 포도도(葡萄圖)를 그렸는데,

여성적인 섬세함과 정교함을 발휘하는그의 화풍은 따를 자가 없었고, 필법(筆法)도 능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이자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 남편을 잘 보필한 아내로서,

그리고 교양과 학문을 갖추고 천부적 소질을 발휘한 예술가로서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율곡선생의 일생을 인형으로 제작해 뒀는데

누구나 보기 쉽고 또 인형들이 귀여워 더 눈이 들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 본관은 덕수(德水)로 중종 31년(1536)에

강릉 북평촌의 외가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출생했습니다.

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서울 본가로 올라와 어머니로부터 학문을 배웠습니다.




명종 3년(1548) 13세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이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는데요.

29세에 호조좌랑에 처음 임명된 이후 황해감사, 대사헌, 대제학, 호조, 병조, 이조판서를 역임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실시와 사회제도의 개혁에 노력하였던 이이.

학문에 있어서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룬 유학자로 근본원리를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학문연구의 태도로 삼았으며,

학문을 이론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책으로 민생과 국가 재정 문제에 적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선생의 저서로는 《성리설》, 《성학집요》, 《격몽요결》 등이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ㅋ 나와 유적지를 둘러봅니다.




  


길 따라 보이는 단풍나무들도 너무 이쁘고!!!




  


연못도 있어서 더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길 끝에 이이선생의 묘역이 있답니다.




가족묘역으로 들어서는 여현문.

그 문 앞쪽이며 문 안쪽까지 단풍이며 은행나무가 가득했는데


  


특히 안쪽 은행나무가 정말 이뻤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그 앞에서 찰칵! 




  


가족묘역은 3곳으로 중간 계단을 올라가면 율곡이이와 신사임당의 묘가 있답니다.




사진 속 가장 위쪽이 율곡 선생과 곡산노씨묘이며

바로 앞에 보이는 묘가 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의 합장묘입니다.  


 



묘역을 나와 향한 곳은 자운서원으로, 이 서원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들로 인하여 창건되었습니다.





  


효종(孝宗)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肅宗) 39년(17B)에 그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인 고종(高宗) 5년(1868)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빈터에 묘정비(廟庭碑)만 남아 있다가 1970년 유림의 기금과 국가지원을 받아 복원하였고 1973년 경내 주변을 정화하였는데,

경내의 건물로는 팔작지붕으로 된 사당(祠堂)과 삼문(三門) 등이 있으며 담장 밖에는 묘정비(廟庭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최근에 사당 전면에 강당과 동재, 서재, 협문, 외삼문을 신축하고 주변을 정비하였고,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답니다.


저기저기! 나무 아래 꿈남편♡

화석정 나무처럼 이 곳 나무들도 수령이 어마어마했는데요. 450년...

그 세월의 멋스러움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 곳이 신도비인데, 마지막에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ㅠㅠ 사진에 자세히 담지는 못했어요....

여튼 율곡이이신도비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로,

율곡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인조 9년(1631) 4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金尙容)이 썼습니다. 비의 재질은 대리석으로 앞뒷면에 걸쳐 각자(刻字)되어 있는데

앞면에 몇 군데의 총탄 흔적이 있으며, 비의 규모는 높이 223cm, 너비 109cm, 두께 39cm이며 현재 비각을 지어 보호하고 있다고 해요.






고운 단풍 아래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얼이 살아숨쉬는 파주 이이 유적.

한적함까지 더해져 참 좋은 곳이였는데,

파주 나들이 가실때 꼭 한번 들려보시라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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