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오층석탑과 정림사지석불좌상을 만나다

꿈모시 2017. 9. 8. 13:00

안녕하세요. 꿈꾸는 모래시계, 꿈모시입니다.

오늘은 6월 말에 다녀온 부여여행 이야기 이어갈께요.

 

 

통영 & 부여여행의 마지막 날, 롯데부여리조트(http://ggumosi.tistory.com/365)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부여 정림사지로 향했습니다.

통영에서 부여로 올라오던 날부터 꼬여버린 일정 ㅋㅋ 또 너무나 더웠던 날씨에 부여에서도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답니다.

결국 백제문화단지와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를 가지 못했었어요.

이미 많이 방전된 체력!! 또 집까지 운전해야하는 꿈남편을 배려?해서 ㅋㅋ

정림사지까지만 보고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백제문화단지와 부여박물관은 다시 다음을 기약하기로....

성흥산성의 석양과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단지의 아쉬움을 덜기위해 꼭 다시 부여에 와야겠다 다짐했답니다. 

 

 

 

정림사지 관람안내는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정림사지 관련 정보는 안내책자를 참고하였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앞쪽의 연지.

수련잎이 가득했는데 저희가 갔을땐 아직 꽃이 피지 않았었답니다.

제 포스팅이 늦어지는 사이 수련이 이미 피였다가 시들었을듯하네요 ^^;

 

 

 

정림사지는 백제 사비도읍기(538~660년)에 건립된 사찰로서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 내부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제멸망으로 소실되였고 발굴조사를 거쳐 가림터를 정비 후 현재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정림사지오층석탑는 국보 제 9호로 높이는 8.8m입니다.

백제 장인들은 기존의 목조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탑을 택했다고 합니다.

세부 구성형식이 정형화되지 못한 미륵사지 석탑에 반하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되고 완숙한 미를 보여주는데요.  

 

 



좁고 낮은 단층 기단과 각층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 기단부,

낙수면의 내림나루등에서 목탑적인 기법을 볼 수 있지만

목조의 모방을 벗어나 창의적 변화를 시도하여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으로 그 의의가 큽니다.

  



 

어찌 이걸 만들었을꼬....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신기할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있었을까요.

또 그 오랜 세월을 이겨낸 석탑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있으니,

자연의 위대함도 있지만 이런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싶네요.

 

서화랑터.





 

정람사지오층섭탑 뒤로 강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 보물 제 108호 정림사지석불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며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남아 있습니다.

높이는 5.6m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불상이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림사지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왼쪽으로 정림사지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은 그냥 지나치시기도 하던데, 박물관까지 봐야 제대로 본게 아닐까요.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 왼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비가 있습니다.

가장 안쪽은 조선 제 18대 현종의 둘째딸, 명혜공주태실비입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두 번의 이건 후 현재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 비는 부여인천대교비입니다.

임천면 만사리 논에 묻혀 있던 것을 만사리 마을로 이전하였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을에서는 오랫동안 개(犬)의 충절을 기린비로 인식해 왔습니다.

후에 조사 결과 조선시대 임천에서 서천군 한산을 이어지는 대로

상의 하천을 넘는 달리와 관련된 비임을 알 수 있었고 2010년 현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백제 사비시기 불교와 그 중심에 있던 정림사를 주제로

백제 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건립된 정림사지 박물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발굴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고 씌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이후로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양면에 먹으로 글씨가 쓰여진 목간.





박물관의 안내 화살표를 따라 관람하다가

복도 옆으로 작은 연못도 발견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는데 출입이 안되더라구요 ㅠㅁㅠ



  


 

흙으로 빛은 보살상, 상.하로 합쳐든 양손에 보주를 받들고있는 소조보살상편으로

두부를 포함한 신체 상부 및 불신부가 파손되었으나 양쪽 팔굽까지 남아 있어 등체의 추정이 가능합니다.

손에 보주를 든 불상은 초기백제의 형식으로 서산마애삼존불의 우협시보살상, 태안마애삼존불의 중앙보살상 등

백제 전역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백제 불상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아스카 및 나라시대의 보상상에서도 다수 확인됩니다.

 

 

부여에 가신다면 꼭 들려봐야하는 정림사지.

빠른 걸음이면 30분 만에라도 보고 나올 수 있는 곳이지만 저와 꿈남편은 1시간 반을 머물렀습니다.

백제. 그 역사에 다가기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였기에 언젠가 못다한 여행을 이어가렵니다.

부여. 그 이름만으로 평온해지는 곳으로!! 어느 가을 날 다시 찾을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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