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꿈꾸는 모래시계, 꿈모시입니다.
오늘은 세계유산조선왕릉, 김포 장릉 이야기 함께해요.
관람시간 및 요금 등은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주차는 50대?정도 가능했는데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보니 만차.
주변에 따로 주차할 공간도 없어서 당황했지만 다행히 2~3분만에 자리가 나서 입장할 수 있었답니다.
주차관리 해주시는 분들이 안내를 해주시니 그냥 기다리시면 되요.
* 모든 내용은 홈페이지와 안내책자에서 담아왔으며, 약간의 편집을 하여 올립니다.
매표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장릉 역사문화관이 바로 있습니다.
조선 왕릉에 가면, 이곳에 들려 공부 후 둘러보면 좋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역사문화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역사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소나무는 더욱 멋스러움을 자랑하는데,
차즘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커다란 불두화 나무는
그 곁을 지나는 꿈모시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ㅋㅋ
꿈모시는 그 곁에 서서 사진을.. ㅋㅋ
불두화의 꽃말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라는 뜻이라 하는데
네 정말 그런거 같습니다. 나무와 꽃도 자라고 돌마저도 세월에따라 모습이 변하니,
변하지 않는 건 없는거 같습니다.
꽃말을 보여주듯
한뭉치로 피였다가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
그 중 바닥에 떨어진 뭉치를 잠시 손에 올려보았습니다.
곱게 피워 아름다웠으니 이제 자연으로 돌아갈 시간.
소중히 담았다 다시 내려놓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 같네요.
산딸나무는 꽃이 풍성하고 또 커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산딸나무의 꽃말은 견고와 희생이라고 해요.
어디선가 느껴지는 익숙한 향.
이건 분명 때죽나무다!!!
격하게 두리번거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때죽나무 발견.
흐르는 물에 떨어져 둥둥 떠 있던 때죽나무 꽃.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 피어 그런가 꽃말은 겸손이라고 해요.
좋은 향이 퍼져 길목을 지나면 꼭 바라보게 하는 때죽나무 꽃!!!
가끔 사진을 찍고 있음 꽃 이름을 묻는 분들이 계신답니다.
다행히 아는 꽃이면 알려드리는데,
그럴때면 뿌듯하고 으쓱하고 그러네요.
불두화 보고 때죽나무보고 하느냐고 ㅋㅋ
거리에 비해 너무너무 늦게, 재실에 도착했습니다.
장릉에 입장해서 40분만에 재실 도착, 절대 그렇게 걸릴 거리가 아닙니다.
저희는 중간중간 사진찍고 한참 꽃보고 그랬어요 ㅋㅋ
생각에 잠긴 꿈모시.
사실 그냥 더워서 앉아서 쉬는거예요. ㅋ
그런 저를 보며 꿈남편은 신났다고 아내 사진 찍으며 취미생활 중.
이렇게 찍으면 이중턱 보이는데!!! 으르렁 ㅋㅋ
제가 그렇게 찍으면 이중턱 나온다고 찡얼거려서,
다시찍어준 사진.
근데 이것도 보이는거 같아요!! 흑... ㅋ
왕릉은 역사나들이는 물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도 제격인 곳입니다.
우거지진 나무와 계절마다 피는 야생화가 있을 뿐 만아니라
장소가 장소인 만큼 다들 조용히 걷기 때문에 평화롭고 그래요.
특히나 김포 장릉은 연지와 저수지까지 있어서!!!
더 좋았는데 지금쯤이면 연꽃이 만발했을까요?
저희는 5월 말쯤에 다녀왔었는데 안내지를 보니 이 연못에 연꽃이 피더라구요.
다음엔 연꽃 피는 시기에 출동해보려구요.
어머!! 근데 생각해보니 올해 아직 연꽃을 못봤네요.
봄에는 참 꽃 많이 봤는데 ㅋㅋ 연꽃은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연지를 돌아 드디어 장릉에 도착했습니다.
홍살문이 보이고 뒤쪽으로 정자각이 위치해있습니다.
원종(재세 : 1580년 음력 6월 22일 ~ 1619년 음력 12월 29일)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셋째 아들로
1580년(선조 13)에 경복궁 별전에서 태어났습니다.
인헌왕후 구씨(재세 : 1578년 음력 4월 17일 ~ 1626년 음력 1월 14일)는 본관이 능성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평산부부인 신씨의 딸로 1578년(선조 11)에 태어났습니다.
1590년(선조 23)에 정원군과 가례를 올려 연주군부인에 봉해졌으며, 원종과의 사이에서 3남(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을 낳았습니다.
14. 선조(41년,1567~1608)/덕흥대원군3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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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왕후 박씨 |
인목왕후 김씨 |
공빈 김씨 |
인빈 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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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광해군(15년,1608~1623)/선조서2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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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1580~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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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유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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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왕후 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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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인조(26년,1623~1649)/원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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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열왕후 한씨 |
장렬왕후 조씨 |
1587년(선조 20)에 정원군(定遠君)에 봉해진 원종.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를 모시면서 험난한 일을 겪었으나,
나이가 어렸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대처하여 모두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전란의 한가운데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신하들에게 명하여 정원군(원종)을 영변으로 데려가 왜적을 피하도록 하였는데
그 때 정원군이 영변에 이르러 울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임금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왜적의 형세가 날로 성하고 임금의 행차는 날로 멀어지니,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임금과 신하가 죽음과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인데,
이 몸이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선조는 이를 전해듣고 가상히 여겨 정원군을 다시 불러왔으며,
그 뒤로 정원군은 선조 곁을 떠나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셨다고 합니다.
그 후 임진왜란이 종결되자 선조는 정원군을 호성공신에 봉했습니다.
원종은 선조의 사랑을 득뿍받는 아들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후에 큰 화가 되었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늘 왕위를 위협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복동생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말은 뜬소문이라도 그냥 넘길수 없었는데요.
더욱이 정원군은 성품이 호탕하고 무예에도 뛰어나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으며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가 셋째 아들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 유배지에서 자결하였고, 정원군은 걱정과 불안으로 나날을 가까스로 버티다가
1619년(광해군 11)에 40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로부터 4년 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으로 첫째 아들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사친으로 정원대원군에 추존되었으며,
연주군부인은 연주부부인에 책봉되고 계운궁(啓運宮)이라는 궁호를 받았습니다.
1626년(인조 4)에 경덕궁(경희궁) 회상전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정통성 문제로 인해 원종과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존되었습니다.
1619년(광해군 11)에 선조의 왕자 정원군(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양주 곡촌리(현 남양주시 금곡동)에 묘를 조성하였습니다.
1626년(인조 4)에 계운궁 연주부부인(인헌왕후)이 세상을 떠나자 김포 성산에 육경원을 조성하였는데
이때 정원대원군의 원의 이름을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627년에 흥경원을 육경원으로 천장하면서 원의 이름을 흥경원이라 하였다가,
1632년(인조 10)에 정원대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으며
이때 능을 왕릉제도에 맞게 새로 조성하였다고합니다.
흥경원을 장릉으로 격상시키면서
울창한 숲길에서 부부셀카!
주소 : 경기 김포시 장릉로 79
전화 : (031)984-2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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